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쓰비시 그룹 (문단 편집) === 창업 === 창업자는 [[토사 번]] 출신의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다. 2010년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은 이 사람의 나레이션([[카가와 테루유키]]가 담당)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와 아는 사이로 극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그때 그의 젊은 시절 집안형편을 묘사해놓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창작에서의 설정일 뿐이다. 둘이 사이가 안 좋았다는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는 것은 드라마 내에서의 설정일 뿐.] [[1868년]] [[메이지 유신]]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가 여러 봉건영지들을 해체하자, 1871년 [[오사카부|오사카]]에서 자신이 경영을 맡아오던 도사번 운영의 작은 선박회사와 상점을 인수하여 도사 가이세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가 가지고 있던 회사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후 츠쿠모(九十九) 상회, 미쓰카와 상회를 거쳐 1873년부터 미쓰비시 상회로 사명을 바꾸며 사세를 확장했다. 특히 이 때 미쓰이 상회와 도사 가이세이의 피터지는 경쟁이 일본 경제사에서 유명해서, 나중에는 고베-오사카 간 도선요금이 풍덩풍덩 내려가다 못해 무료(!)로 출혈경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두 회사는 신사협정을 맺어서 타협하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미쓰비시 상사]] 문서 참조. 참고로 이와사키 집안은 토사 번의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대에 '지하[[낭인]]'이라고 해서 무사계급을 팔아버린 신분으로 일반 백성이었으며[* 지하낭인이라는 계급 자체도 천한 것이지만 당시 토사번은 사무라이가 다른 번들과는 달리 토사를 다스리는 야마우치 가문의 가신 출신들인 상사와 [[센고쿠 시대]] 토사를 다스렸던 [[쵸소카베]] 가문의 가신 출신들인 하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사는 상사들에게 짐승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심한 꼴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극에선 대부분 심한 수준의 멸시를 받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대하드라마 신선조에 등장한 사카모토 료마의 대사에선 취급이 벌레 이하라는 언급이 있고 료마전에선 그것이 더욱 생생하게 묘사된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 야지로와 새장을 팔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았다. 20대에는 목재를 팔아 장사에 성공하였다. 또한 [[오쿠보 도시미치]] 정권 하에서 [[사가의 난]], [[타이완 출병]], [[서남전쟁]] 등에 적극적으로 [[메이지]] 신정부를 지원하고 이에 따른 지속적이고 엄청난 양의 떡고물을 통한 해운 운수업의 확장으로 ‘해운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를 들어 13척의 관유선 무상불하, 5년간 약 250만 엔의 준비금 대부, 미쓰비시 소유의 선박 17척 정부매입 후 무상불하(약 62만 엔) 등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한편 정경유착 관계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던 와중에 언론으로부터 특혜를 받는다는 비난이 일었고, 특히 미쓰비시 상회의 후원자였던 [[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과 [[오쿠마 시게노부]]의 실각으로 잠깐 사세가 휘청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1882년에는 (막신으로 활동하였던 사업자들로도 포함하는) 반 미쓰비시 사업자들이 정부의 출자를 획득하고 교도운수회사(共同運輸会社) 설립으로 미쓰비시 상회를 견제하기도 했으나, 결국 미쓰비시가 경쟁에서 이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